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80 모스크바 올림픽 (문단 편집) === 보이콧 === 하지만 [[1979년]] 12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터지자 인권 외교를 표방하던 [[미국]]의 [[지미 카터]] 정부는 [[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했고, 이에 동조해 [[대한민국]], [[서독]], [[일본]], [[노르웨이]], [[캐나다]], [[튀르키예]], [[태국]] 등 서방 세계라 불리는 국가들 중 상당수가 올림픽 참가를 포기했다.[* 그러나 [[미국|같은 나라]]면서 선수단을 따로 보내는 [[푸에르토리코]]는 참가했다. 푸에르토리코 올림픽 위원회는 권투 선수 세 명을 출전시켰고, 이 세 선수만이 미국 여권을 들고 와서 참가한 선수가 되었다. 단, 푸에르토리코 깃발이 아닌 '''올림픽기를 앞세워 개인 자격으로''' 입장하였다. 반대로 영국 본토는 참가했지만 홍콩은 불참했다.] 그러나 [[그리스]][* 올림픽의 발상지이기도 한 그리스의 경우 올림픽 대회에서 입장할 때 가장 먼저 입장하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참가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1980년 올림픽은 친 그리스 국가인 [[키프로스]]의 첫 올림픽 무대였다.]나 [[아이슬란드]], [[스웨덴]]처럼 보이콧하지 않고 올림픽 대회에 참가한 서방 국가들도 있었다. 한편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와 같은 [[미국]]의 말에 무조건 따르기 싫고, 그렇다고 항의해야 할 것 같은 일부 서방 국가들은 나라들은 한때 대한민국 선수단의 플랜B로 거론되었던, 국기 대신 올림픽기 또는 자국 올림픽 위원회기를 들고 입장하여 이 대회 참가가 개인적인 것이라는 점을 명시해 버렸다.[* 국기 대신 자국 올림픽위원회기를 내세우고 참가한 나라는 [[스페인]], [[포르투갈]], [[뉴질랜드]], 그리고 올림픽기를 내세우고 참가한 나라는 [[호주]], [[덴마크]], [[푸에르토리코]], [[안도라]]. 한편 개막식에서도 선수단이 개막식 입장을 거부하고 소련 측 주최 관계자가 대신 올림픽기를 들고 입장한 나라는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위스]], [[룩셈부르크]], [[산마리노]]였으며 [[영국]], [[아일랜드]]처럼 개막식에서 임원 한 명만 올림픽기를 들고 입장한 경우도 있었다.] 덤으로 [[소련]]과 사이가 [[중소결렬|1960년대 이후 좋지 않았던]] [[중국]]도 이 때 그냥 불참해 버렸다. 원래 이 대회를 통해 하계 올림픽 무대에 처음 데뷔할 예정이었는데 결국 4년 뒤인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으로 연기됐다. 이외에 [[일본]]과 [[대만]]도 불참했고 [[이란 혁명|이슬람 혁명]]으로 [[이란]]도 불참했다. [[대한민국]]도 보이콧했다. 미국의 보이콧 선언에 서방국가들이 동조하는 분위기인지라 그 영향이 당연히 한국에도 미쳤는데 '보이콧에 동참해야 한다'는 의견과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선수들에게 피해가 가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대립했고 일각에서는 '그러면 참가를 원하는 선수에 한해 태극기 대신 올림픽기 쥐어주고 개인 자격으로라도 참가시키자'는 절충안도 나왔는데, 정서적으로는 [[북한]]의 우방국 이미지인 공산국가 [[소련]]의 심장부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대한 반감도 있고[* 그렇지만 [[대한민국]]은 이미 1973 모스크바 하계 유니버시아드와 [[민스크]] 세계 레슬링 선수권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1960년대 말부터는 '공산권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참가하지 않는다.'란 원칙은 없어서 여건이 되면 다 참가했다. 대통령이 바뀌진 않았지만 1962년 월드컵 지역예선 때와는 입장이 상당히 달라진 듯. 다만 반대로 1980년대 초까지는 공산권 국가들은 '남조선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존재했다. 지금 보기는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올림픽과 인지도도 낮고 대부분이 아마추어 대학생들로 이루어진 유니버시아드가 크게 차이가 나게 보이지만, 1973년 당시에는 올림픽 메달도 따기 힘든 시절이라 당시 유니버시아드에 관심이 높았고, 이 대회 참가는 큰 이슈가 되었다. 메달을 따자 '적의 심장부에 태극기를 올렸다'는 기사들도 올라왔다.][* 그 후 1983년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이후에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유도선수권에는 불참했다. 다음 1985년 대회 개최지가 [[서울특별시]]였음에도 대회를 보이콧한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서 최종 엔트리 마감 1주일 전인 1980년 5월 17일이 되어서야 KOC 긴급총회를 통해 결국 불참하기로 확정했다. 그런데 긴급총회의 결정이 아니더라도 국내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참가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긴급총회가 개최된 당일 [[신군부]]의 [[5.17 내란|계엄 확대]]가 감행되었고, 뒤이은 [[5.18 민주화운동]]과 신군부의 정권 찬탈로 인한 국내 정국의 불안정 때문에 참가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불운을 맛본 선수들이 상당히 많은데, 대표적인 선수가 당시 여자 양궁 세계선수권 대회 우승자였던 [[김진호(양궁)|김진호]]였다. 그녀는 최전성기에 올림픽과 인연을 맺지 못하면서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의 영광과는 아쉽게 멀어졌고, 4년 후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참가했지만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신예 [[서향순]]이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동메달로 만족해야 했다. 그럼에도 [[김진호(양궁)|김진호]]는 지금도 한국 여자 양궁 역사상 최고 선수(즉, 신궁)의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다. 한편 1970년대 초반 [[펩시]]가 [[소련]]에 진출하여 짭짤하게 수익을 내자 이에 맞서 [[코카콜라]]도 소련에 진출하려 했다. 소련 당국에 지속적인 로비를 한 결과 올림픽 때 코카콜라를 팔 수 있게 허가권까지 받아냈고 이를 계기로 소련에 진출하려고 했지만 하필이면 그놈의 아프간 침공이 터지면서 [[미국]]의 보이콧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결국 1987년이 되어서야 코카콜라는 본격적으로 소련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여러 미국 패스트푸드점들이 소련에 진출하려고 했지만 마찬가지로 사업이 무기한 연기되었고, 개방을 주장한 [[미하일 고르바초프|고르비]] 정권이 되어서야 소련에 진출하게 되었다. 역사상 다섯 번 일어난 집단 보이콧의 하나이며 그 규모가 가장 커서 파행으로 치러진 올림픽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같이 언급된다. 한 마디로 '''반쪽 대회.''' 올림픽 주 경기장인 [[루즈니키 스타디움]](당시는 레닌 스타디움)은 보수를 거쳐 [[F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의 홈 구장으로 쓰였으나 현재는 신축한 다른 경기장으로 홈을 이전했다. 2007-2008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린 곳이자,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2018년 러시아 월드컵]]의 결승전이 열린 경기장이기도 하다. [[미국]]과 서구 국가들이 없던 자리는 [[소련]](금메달 80, 메달 195개)을 위시로 [[동독]](금메달 47, 메달 126개), [[불가리아]](금메달 8, 메달 41개), [[체코슬로바키아]] 등의 [[그들만의 리그(속어)|공산권 국가들이 순위를 차지하면서 마무리되었다.]] 전체 메달의 약 40%를 소련과 동독 두 나라가 차지했으며, 금메달만 따진다면 60% 정도다. [[이탈리아]]가 5위, [[헝가리]], [[루마니아]]에 이어 올림픽기 들고 참가한 [[프랑스]]와 [[영국]]이 체면치레를 하는 정도였으며 [[북한]]은 26위였다.[* 은메달 3에 동메달 2개. 금메달이 없어서 순위는 더 낮았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금메달 4개, 동메달 5개(금, 은, 동 순 16위)가 최고 성적이고, 이건 3번째로 높은 성적이다.([[2012 런던 올림픽]] 20위) 다만 메달 개수로 따지면 의외로 1992년에는 21위, 2012년에는 순위권 밖이었다.] 메달수로 따지면 순위는 소련, 동독, 불가리아, 헝가리-[[폴란드]], 루마니아, 영국, 쿠바 순서가 된다. 공교롭게도 차기 개최국이 바로 [[미국]]이었는데[* 같은 해 열렸던 동계 올림픽 개최지도 미국 [[뉴욕주]] [[레이크플래시드]]. 주로 동계올림픽이 연초에 열리기 때문에 같은 해에는(1992년까지) 동계 대회가 먼저 열리게 된다. 그 대회 당시 서방 국가들의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이 예측되었지만, 이 때는 동구권 선수들이 그냥 참가하고 다음 하계 올림픽 때 보복했다. [[중국]]도 참가했다.] 미국이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하게 됨에 따라 결국 차기 개최국가의 국기 게양식 때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를 대신하여 [[로스앤젤레스]]의 시기(市旗)가 게양되고 미국 국가 대신 로스앤젤레스의 시가(市歌)가 연주되어 올림픽 사상 최초로 특정 국가의 도시 시기와 시가가 연주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미국]] 측이 국기 게양과 국가 연주를 거부했다. 미국은 선수는 참가시키지 않았지만, 일부 임원과 심판은 파견했다.]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 때의 보복을 잊지 않은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이 칼을 갈면서, 4년 후 반쪽 대회 시즌 2가 열리게 된다]]. 보이콧만 한 게 아니라 공산권은 딱 LA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에 [[프렌드쉽 게임]]이라는 국제 스포츠 대회를 개최해서 흥행을 깎아먹었다. 사실 서방 진영도 규모는 작지만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대항해 [[올림픽/종류#s-6|리버티 벨 클래식]](Liberty Bell Classic)을 만들어 1회성 육상대회를 열기는 했다. 그리고 [[1988 서울 올림픽|8년이 지나고 나서야 드디어 소련과 동유럽은 다시 참가를 하게 된다.]][* 다만 [[북한]] 등의 일부 국가는 보이콧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